기억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논리에 따라 설정되지 않으며, 파편화되어 무의식의 기저에서 떠다니다가, 과거와 유사한 경험을 하거나 현재 상황에 따라 재소환하며 왜곡된 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작가에게 기억은 과거와 현재로 이어진 끈에서 탈각한 고통의 응고물입니다. 그런데도 기억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 기억에는 사랑하는 대상이 함께 머물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친구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이모의 자살 등 죽음의 공포와 폭력으로 점철된 유년 시절의 절망과 공포, 앞뒤 퇴로 없는 그 고통으로부터 유일하게 안식처가 되었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로부터 작업이 시작됩니다. 작업을 통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산산이 깨뜨림으로써, 그 깨어진 껍질로부터 흘러나오는 긍정의 가치 전환을 육화하는 것에 작업의 목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정순 씨라는 캐릭터와 그녀가 머무는 제의적 투사인 공간을 그곳이라 설정하고, 여러 주변의 상처받은 존재들을 캐릭터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정순 씨는 많은 의미를 대변합니다. 그녀에게는 투영할 수 없는 감정이나 의미란 없습니다. 정순 씨가 건네는 꽃은 불안정한 감정 상태에 관한 안전장치와도 같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일회성을 자각하며, 비로소 참다운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삶의 올바른 나침판은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을 가리켜야 합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서 기억과 정순 씨를 매개로 하여 상처를 넘어 그곳을 가리키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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